한국 게임산업 발전의 주역, MMORPG

온라인 게임 좀 해 봤다는 게이머라면, 가슴 속에 MMORPG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MMORPG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 공유한 경험은 동질감이 되고, 하나의 사회를 형성한다. 그야말로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다. 한국 게임산업 발전을 견인함과 동시에, 온라인 게임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MMORPG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됩니다.
온라인 게임과 그래픽 MUD 게임의 등장
MMORPG라는 단어는 MMO와 RPG의 합성어다. MMO는 Massively Multiplayer Online의 약자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한 자리에 모여 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Massively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지역에 수백 명 이상이 모일 경우 MMO로 분류한다. 이와 달리 한 방에 열 명 내외가 모여 즐기는 경우 Massively를 뺀 MORPG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장르명과 같이, MMORPG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일종이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비디오 게임과 비견될 정도로 깊다. 컴퓨터 게임이 막 발명될 무렵인 1961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는 교내 교육시스템 전산망 구축을 위해 ‘PLATO(Progr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라는 네트워크 기술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교육용으로 도입되었으나, 다수의 사람이 한 서버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은 교육 외에도 수많은 분야에 응용됐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게임이었다.
오실로스코프에서 구현된 최초의 컴퓨터 게임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를 비롯해, 1950~60년대 등장한 초창기 게임은 플레이어 간 대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았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스페이스 워(Space War, 1961)’ 역시 2인 플레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한 자리에 모여야만 했다. 1969년, 릭 블룸(Rick Blomme)은 PLATO 네트워크를 이용해, 서로 떨어진 컴퓨터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버전의 ‘스페이스 워’를 제작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다.
이후 PLATO는 온라인 게임 발전의 기반이 된다. 1973년에는 최대 32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한 슈팅 게임 ‘엠파이어(Empire)’가 나왔으며, 같은 해에는 PLATO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 ‘토크오매틱(Talkomatic)’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CRPG 붐을 타고 ‘던전 앤 드래곤’ 룰을 바탕으로 한 ‘아바타(Avatar)’와 ‘오블리에트(Oubliette)’ 등의 RPG도 PLATO를 통해 출시되며 온라인 게임의 초석을 다졌다.

▲ 초기 온라인 게임 발전의 기반이 된 ‘PLATO’ 시스템 (사진출처: physics.illinois.edu)
한편,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RPG와 온라인의 만남을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게임이 등장했다. 바로 에식스 대학에 다니던 로이 트럽쇼(Roy Trubshaw)라는 청년이 PDP-10 컴퓨터를 통해 개발한 ‘멀티 유저 던전(Multi User Dungeon, 일명 MUD1)’이다.
‘MUD1’는 ‘던전 앤 드래곤’ 등의 테이블 RPG를 기반으로 한 초기형 컴퓨터 RPG로,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키보드를 통해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여 이동과 탐험을 진행했고, 서버에 접속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MUD1’는 1980년에 이르러 에식스 네트워크를 통해 정식 배포되었으며, 훗날 전세계적 네트워크망 ARPANET에 편입되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후 ‘MUD’라는 단어는 텍스트로 진행되는 온라인 RPG를 칭하는 장르 용어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1980년대 중반에는 수많은 MUD 게임이 등장했다. 1984년 아스키 부호를 통해 시각 효과를 구현한 MUD 게임 ‘아일랜드 오브 케스마이(Island of Kesmai)’, ‘아스다스(Arsdath)’ 등을 거쳐, 1985년에는 최초로 사업적 서비스 모델을 적용한 ‘메가워즈’ 등이 줄을 이었다. 개념적 측면에서 봤을 때, 위에서 언급한 MUD 게임들은 MMORPG가 갖춰야 할 요소를 다수 갖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하나의 서버에 모여 동일한 RPG 세계에서 각자의 모험을 즐긴다는 MMORPG의 정신은 이 때부터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LATO로 출시된 RPG ‘오블리에트’ (사진출처: zimlab.com)
 

▲ 텍스트 온라인 RPG ‘MUD1’ (사진출처: johnnyholland.org)
그러나 텍스트로만 진행되는 MUD 게임은 일반 게이머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다소 어려운 면이 있었고, 그래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온라인 게임에 그래픽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1980년대 중반부터 카지노 게임 ‘래빅 잿 카지노’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에어워리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선보여졌으며, 1991년에 들어서는 MUD 최초로 그래픽을 적용한 ‘네버윈터 나이츠(바이오웨어가 만든 동명의 작품과는 별개)’가 출시되었다.
‘네버윈터 나이츠’는 ‘어드밴스드 던전 앤 드래곤(AD&D)’을 기반으로 한 RPG로, 맵과 캐릭터 이동, 각종 상호 작용과 전투 등의 과정을 2D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게임 내에는 래더 전투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어 랭킹 시스템, 플레이어 간 전투(PvP), 기본적인 정치와 길드 시스템 등 현대 MMORPG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시스템이 존재했다. 초창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만 이용했으나,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이용자가 늘어나 1997년 서비스를 종료하기 직전에는 천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네버윈터 나이츠’를 시작으로 MUD에 그래픽 요소를 접합한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예서비우스의 그림자(The Shadow of Yserbius)’, ‘트위니온의 운명(The Fates of Twinion)’, ‘코도르의 폐허(The Ruins of Cawdor)’로 이어지는 ‘예서비우스’ 시리즈를 비롯하여, 1995년에는 3D 폴리곤을 사용한 최초의 그래픽 MUD ‘메리디안 59(Meridian 59)’ 등이 출시되었다. 이들을 일컬어 그래픽 MUD, 혹은 국내 한정으로 MUG(Multi User Graphic) 게임이라 부른다. 이 때부터 쌓인 온라인 게임의 기술적 기반은 1세대 MMORPG 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 세계 최초의 그래픽 지원 MUD ‘네버윈터 나이츠’ (사진출처: bladekeep.com)
90년대 중후반 ‘울티마 온라인’과 ‘바람의 나라’, 1세대 MMORPG 등장
마니아 사이에서만 전파되던 온라인 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6~1997년이다. 이 시기부터 MMORPG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시발점이 된 게임이 바로 ‘울티마 온라인’이다.
이미 ‘울티마’ 시리즈를 통해 RPG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한 리차드 게리엇은 게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온라인을 통한 멀티플레이가 필수라고 생각해 왔다. 이를 위해 오리진 시스템이 EA에 합병되기 전인 1990년부터 ‘울티마’의 온라인 버전 개발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1997년, 마침내 ‘울티마 온라인’이 정식서비스를 시작했다. 리차드는 ‘울티마 온라인’의 장르에 대해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일명 MMORPG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전까지 그래픽 MUD나 MUG 등으로 불렸던 온라인 RPG 장르는 바로 이 MMORPG라는 단어를 통해 정형화됐다.
‘울티마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 자유도다. 자유로이 꾸밀 수 있는 아바타와 집, 제작물을 통해 다양한 개성 표현이 가능했고, 마법사나 전사는 물론 대장장이, 연금술사, 소매치기부터 거지까지 수많은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레벨을 대신한 스킬 숙련도 시스템 역시 캐릭터 성장의 자유를 극대화한 구조였으며, 다른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소지품을 털어가는 것은 물론, 거지를 직업으로 삼아 구걸을 하거나 심지어 GM을 살해하는 등의 독특한 행위까지 가능했다.
‘울티마 온라인’의 업적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서 MMORPG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온라인 게임을 대중화시키고, 본격적인 시장 경쟁 체제를 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울티마 온라인’ 이후 MMORPG 시장은 매년 급성장을 거듭했으며, 이는 ‘에버퀘스트’ 등 밑에서 언급할 작품들이 등장하는 기반이 된다.
 

▲ MMORPG라는 개념을 정립한 ‘울티마 온라인’ (사진출처: worldhistoryproject.org)
여기서 잠깐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 보자. 1990년대 중반, 한국 게임산업은 이제 막 싹을 틔우려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1994년에서야 국내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출시되었고,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 역시 생소할 뿐이었다. 이처럼 느지막이 게임 개발을 시작한 한국이 당시 최신 트렌드였던 1세대 MMORPG 개발국이 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꽤나 독특한 사례인데, 이는 전길남 박사 등의 노력으로 일찍이 세계적인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었던 환경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1990년대 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PC통신 이용자 사이에서는 MUD 게임 붐이 조용히 일었다. 초기에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해외 MUD 게임을 알음알음 즐기는 정도였으나, 1994년 카이스트 출신들에 의해 제작된 ‘단군의 땅’과 ‘쥬라기 공원’이 나우콤과 천리안 등 PC통신 플랫폼을 기반으로 서비스되면서 MUD 게임 열풍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단군의 땅’과 ‘쥬라기 공원’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으며, 많은 이들이 이에 동참했다. 불과 몇 달 만에 백여 개에 가까운 MUD 게임이 연달아 출시되었다. 그래픽 없이 텍스트로만 구성되는 MUD 게임의 특성상 개발이 비교적 손쉬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최초 MUD중 하나인 ‘단군의 땅’ (사진출처: rostory.net)
그렇게 모두가 MUD의 단맛에 빠져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도 희귀했던 그래픽 MUD에 손을 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쥬라기 공원’ 제작에 참여했던 송재경과 그의 대학 동창 김정주다. 그들은 벤처기업 넥슨을 설립하고, 이전부터 꿈꿔 왔던 그래픽 MUD를 개발해 1996년 출시했다. 이것이 바로 국내 최초 그래픽 MUD ‘바람의 나라’다. 이후 송재경은 김택진의 엔씨소프트로 적을 옮겨 MMORPG ‘리니지’를 개발, 1998년 출시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당시 세계적 기준에서 봐도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게임으로, ‘울티마 온라인’과 함께 1세대 MMORPG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게임 역사에서 한국은 컴퓨터 게임의 발상지인 미국이나 게임 강국인 일본에서 발전한 기틀을 흡수해 뒤를 쫓는 제 3국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MMORPG에서만큼은 달랐다. 빠르게 싹을 틔운 한국 MMORPG는 충분한 시간 동안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MMORPG를 통해 한국은 동양권을 대표하는 온라인 게임 강국으로 거듭난다.

▲국내 최초의 MMORPG ‘바람의 나라(상)’와 한국 MMORPG 붐을 일으킨 ‘리니지(하)’
(사진출처: nexoncomputermuseum.org)
2000년대 초~중반, ‘에버퀘스트’의 서구권과 ‘리니지’의 한국
위에서 언급한 1세대 게임들을 통해 MMORPG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온라인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사냥을 다니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재미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나 오프라인 멀티 플레이 게임에서 즐길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게임의 핵심이 되는 전투 부분에서는 온라인만의 장점을 잘 살렸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물론 1세대 MMORPG에도 파티 기능이나 클래스 분류 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파티 플레이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여서 사냥하는 것을 의미했다. 내게 돌아오는 공격 빈도가 적어지고 전체적인 공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빼면, 싱글 플레이 전투의 확대 버전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MMORPG에 하나의 개념적 혁명이 불어왔다. 바로 1999년 출시된 ‘에버퀘스트’다. ‘에버퀘스트’가 MMORPG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2개로 압축하자면, 3D 그래픽 도입과 역할 분담 파티 개념이다. 3D 폴리곤 자체는 1996년 ‘메리디안 59’에서 처음 도입되었으나, ‘에버퀘스트’는 자유로운 시점 회전이 가능한 풀 3D 그래픽을 통해 진정한 3D MMORPG 시대를 열었다. 사실상 이후 나오는 대부분의 3D MMORPG가 이러한 ‘에버퀘스트’ 방식을 채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에버퀘스트’가 MMORPG에 미친 가장 큰 업적은 역할 분담 파티 전투 개념 도입이다. ‘에버퀘스트’는 높은 체력과 방어력을 바탕으로 적의 시선을 끌고 대미지(damage)를 받아넘기는 탱커, 위력적인 공격 기술을 통해 적에게 대미지를 가하는 딜러, 파티원의 체력을 회복시키고 각종 버프 효과를 걸어주는 힐러. 일명 탱-딜-힐로 불리는 역할 분류를 전격 도입했다. 이 같은 방식은 일부 MUD 게임이나 CRPG, 횡스크롤 액션 게임 등에서 부분적으로 선보여진 시스템이었으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MMORPG에서 적용된 적은 없었다.
‘에버퀘스트’ 역할 분담 파티 전투 시스템은 파티원과의 긴밀한 협력과 상호작용을 유도했으며, 혼자서는 잡을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를 힘을 모아 전략적으로 사냥하는 새로운 재미를 개척했다. 이는 오직 온라인을 바탕으로 한 MMORPG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이밖에 ‘에버퀘스트’는 퀘스트를 통해 진행되는 레벨링 시스템이나 몬스터가 공격 대상을 결정하는 어그로 공식 등 다양한 개념을 차례차례 도입하며 MMORPG 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MMORPG에 혁명을 가져온 ‘에버퀘스트’ (사진출처: gamespark.jp)
이후 미씩 엔터테인먼트에서 2002년 출시한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Dark Age of Camelot, DAOC)’은 ‘에버퀘스트’류 3D MMORPG의 기준을 유지하면서, 국가 간 대형 전쟁(Realm vs Realm, RvR)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에버퀘스트’와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을 거치며 MMORPG는 파티 플레이를 위주로 한 PvE(Player vs Environment), 적 플레이어나 세력과의 전쟁을 다루는 PvP(Player vs Player)라는 두 개의 핵심 요소를 갖추게 된다.
동 시기, 한국에서는 시대적 흐름이 MMORPG 전성기를 가져왔다. 1998년을 기점으로 초고속 인터넷망이 일반 가정에 보급되면서 유저 접근성이 급속도로 높아졌고, 한편으로는 와레즈 등의 여파로 PC 패키지 사업이 급속도로 몰락하며 새로운 플랫폼인 온라인 게임에 유저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PC방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온라인 게임을 접할 기회가 더욱 증가했다.
한국 MMORPG는 서구권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리니지’가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상당수 한국 MMORPG는 ‘리니지’를 롤 모델로 삼았다. 북미 MMORPG가 ‘에버퀘스트’ 이후 수많은 스킬을 조합하고 세밀한 컨트롤과 전술이 뒷받침되는 전쟁 느낌의 전투를 추구했다면, 한국 MMORPG는 끊임없는 사냥을 통한 레벨 업과 고성능 장비 획득을 통해 타인을 제치고 최강의 자리를 목표로 하는 무협지적 성격이 강했다.
이 시기 출시된 한국형 MMORPG 중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게임을 두 가지만 꼽는다면 단연 ‘뮤 온라인’과 ‘라그나로크’를 들 수 있다. 위 게임들은 3D 그래픽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커뮤니티성과 유저 편의성 등을 크게 강화하면서 높은 인기를 모았다. 게임의 기본 구조는 ‘리니지’에서 내려온 한국형 MMORPG를 따르되, ‘디아블로 2’ 인터페이스나 시스템 등에서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갔다.
물론 모든 한국 MMORPG가 이러한 스타일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리니지’ 후속작인 ‘리니지 2’의 경우 ‘에버퀘스트’에서 선보여진 3D 및 파티 플레이 방식을 전격 도입했으며, ‘울티마 온라인’의 영향을 받아 ‘일랜시아’나 ‘마비노기’처럼 자유도와 일상 콘텐츠를 강조한 게임도 선보여졌다. ‘릴 온라인’이나 ‘R2’, ‘메이플스토리’ 등과 같이 액션을 강조한 게임에서부터, ‘임진록온라인 거상(현 천하제일상 거상)’처럼 경제 시스템을 본격화한 작품 등 다양한 시도가 줄을 이었다.

▲ 2000년대 큰 인기를 끈 MMORPG ‘라그나로크’ (사진출처: ragnarok.co.kr)
 

▲ 생활 콘텐츠를 강조한 ‘마비노기’ (사진출처: mabinogi.nexon.com)
MMORPG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개발 규모도 점점 커졌다. 개발비 100억 원을 넘기는 블록버스터 게임이 속속 등장했으며, 중국이나 대만, 일본 등으로의 수출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바야흐로 한국은 동양권 온라인 게임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동양과 서양의 MMORPG 구분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에버퀘스트’로 대표되는 서양과 ‘리니지’로 대표되는 동양의 MMORPG는 추구하는 바가 각기 달랐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 등은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마찬가지로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 등도 서양에서는 낯선 스타일이었다. 결국 아래에서 서술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출현 전까지, 동서양의 MMORPG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등장과 그 이후
2004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WOW)’의 등장은 전세계 MMORPG계에 또 한 번의 혁명을 가지고 왔다.
블리자드 간판 타이틀인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MMORPG로 풀어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 ‘에버퀘스트’나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후계자로 볼 수 있다. 다만, 하드코어 난이도를 지향하던 ‘에버퀘스트’나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과 달리, 비교적 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콘셉을 추구한 점이 다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특징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테마 파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최고 레벨 이전까지는 싱글 플레이를 즐기듯 각종 퀘스트를 거치며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샅샅이 탐험하고, 최고 레벨을 달성한 후에는 레이드라 불리는 대규모 파티 플레이를 통해 전투의 극한을 경험하게 된다. 레벨업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퀘스트와 보상으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으며, 전투 외에도 수많은 일상 콘텐츠가 존재한다. 심지어 ‘리니지’등 한국 MMORPG에서 볼 수 있는 무협지형 경쟁 구도까지 도입했다.
위에서 설명한 수많은 시스템들은 일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새로운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이 모든 요소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자신만의 색깔로 버무리는 데 성공했다. ‘울티마 온라인’과 ‘에버퀘스트’를 거쳐 발전한 서구권 MMORPG와, 다소 산발적으로 전개돼 오던 한국형 MMORPG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이르러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집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통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MMORPG 역사상 최초로 서양과 동양 양쪽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 최고 전성기였던 ‘리치 왕의 분노’ 확장팩 당시(2010년) 14억 달러의 연매출과 전세계 유료 유저 1,200만 명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그 전후로도 수 년 동안 전세계 온라인 게임 매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네 번째 확장팩 ‘대격변’ 무렵부터 인기가 다소 꺾였지만, 아직까지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성을 넘을 MMORPG는 나타나지 않을 정도다.

▲ MMORPG 사상 최고 성과를 올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진출처: kr.battle.net/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 서구권 MMORPG의 난공불락으로 불렸던 한국이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05년 국내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단숨에 온라인 게임 시장을 평정했다. 이에 국내 MMORPG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국내 개발사들은 이전과 같은 단순 필드 사냥 반복만으로는 유저를 붙잡아 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곧 성장 구간 빼곡히 다양한 퀘스트와 보상을 채워 넣고, 다양한 스킬 활용 및 조합을 강조한 MMORPG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인스턴스 던전과 레이드로 대표되는 집단 사냥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도 맵이나 레벨 디자인, 세력 구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른바 ‘한국형 포스트 WOW’를 향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과도기의 시련이 존재했다. 수백억 원의 개발자금이 투입돼 ‘BIG 3 MMORPG’로 불리며 많은 기대를 받은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 ‘제라’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류작 취급을 받으며 실패의 쓴 맛을 봤다. 특히, 2000년대 중반은 FPS, 스포츠, 액션, MORPG 등 다양한 온라인 게임 장르들이 새롭게 시장을 장악해가던 시기였기에 이전에 비해 시장 진입이 다소 어려워졌다는 면도 크게 작용했다.
과도기를 극복하고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다. ‘리니지’ 시리즈에서 쌓은 공성전 노하우와 무기 강화 등 한국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는 요소를 적절히 살림과 동시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풍의 시대적 대세까지 상당수 수용해 국내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 2008년 출시되어 PC방 점유율 1위 등의 성과를 올린 ‘아이온’ (사진출처: aion.plaync.com)
성장기 지나 황혼기로 접어든 MMORPG
2010년 이후 MMORPG 업계의 흐름은 부분유료화와 하위 장르 특성화로 간략히 요약할 수 있다. 2001년 넥슨이 온라인 퍼즐/퀴즈게임 ‘퀴즈퀴즈 플러스’에서 처음 시행한 부분유료화는 MMORPG 뿐 아니라 모든 온라인 게임 업계에 퍼진 수익 모델이다. 이전까지의 온라인 게임은 사용료를 내고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부분유료화 모델 등장 이후 기본적인 플레이는 무료로,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서는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도록 하는 방식이 주류가 되었다.
MMORPG는 초창기부터 월정액 방식이 널리 통용되었기에 이러한 변화가 비교적 늦은 장르 중 하나였지만, 시대적 흐름은 이미 부분유료화 쪽으로 기울어진 추세다. 이미 국내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의 신작 MMORPG가 부분유료화를 도입해 왔으며, 해외 게임들도 부분유료화 요금제를 채택하거나 전환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부분유료화가 온라인 게임의 미래라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다만, 부분유료화 MMORPG는 플레이어의 노력보다는 현금 아이템 결제 정도가 플레이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스마트폰 MMORPG에서 특히 심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MMORPG의 양적 확대 및 진입장벽 최소화라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어,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 부분유료화 사업모델을 처음 도입한 넥슨의 ‘퀴즈퀴즈 플러스’ (사진출처: instiz.net)
 

▲ MMORPG 전체에 불고 있는 부분유료화 바람을 풍자하는 만평
하위 장르 특성화는 MMORPG라는 장르가 또다시 하위 분류를 형성하며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MMORPG들을 보면 ‘테라’, ‘블레이드앤소울’, ‘검은사막’ 등과 같이 액션을 강조한 작품에서부터, ‘길드워 2’나 ‘스타워즈: 구 공화국’처럼 플레이어와 환경 간의 상호 작용에 집중한 게임, ‘아키에이지’처럼 생활 콘텐츠를 중시하는 게임 등 하위 장르로의 특성화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MMORPG가 예전처럼 한두 게임의 성과만으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성장기를 지나, 지난 경험을 활용/발전시키는 황혼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대 MMORPG의 장르적 발전은 다방면에서 넓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과거에 비해 신작 MMORPG 출시 빈도가 많이 줄어들고, 흥행에 실패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MMORPG 시대는 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MMORPG는 늘 경쟁이 치열했던 분야다. 가만 지켜보면 최근 몇 년 새에도 다각화된 온라인 게임 시장과 기존 주자들의 굳건한 아성, 높아진 유저 눈높이를 뚫고 올라온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트렌드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MMORPG에 대한 유저 수요는 그 어떤 장르보다도 높다. 수요와 공급의 순환이 끊이지 않는 한, MMORPG는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